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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의 순환.근원으로의 회기. 자연스러움 ]
03 June 2023



꽃은 종종 식물의 최종 단계이자 성취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사실 꽃은 번식의 중간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꽃은 피고 난 뒤가 더 중요하다. 수분을 위해 꿀벌과 나비들을 기다리고, 바람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의 끝에 열매를 맺는다. 열매 또한 종종 결실과 성취로 비유가 되지만, 그 또한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퍼뜨린다는 목적 앞에서는 과정일 뿐이다. 열매는 씨앗을 품고, 달콤한 과육으로 동물을 유혹해 스스로 먹이가 되는 방식으로 사방으로 씨앗을 퍼뜨린다. 씨앗은 적당한 보금자리에 자리를 잡으면 뿌리를 내리고 새 생명을 틔운다. 한 식물의 삶은 다른 삶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번식이라는 이름으로 순환한다.


제 몫을 다한 꽃은 저물고 열매는 먹히거나 터져버려 사라지지만 그것은 다음 해에도 필 것이고, 뿌리가 뽑히지 않는 한 그 과정은 다음 해에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제 생명을 다하면 땅에 묻혀 새 식물의 양분이, 새 생명의 세포가, 피부가 될 것이다. 이 틈에 허무가 자리할 곳은 없다. 그것은 계속해서 근원으로 돌아가고 근원에서 새로 태어나기 때문에. 그것은 근원에서 시작되고 근원으로 돌아가는 목적을 성실히 수행한다. 그것은 대지ㅡ자신의 우주ㅡ로 돌아감으로써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근원으로 돌아감’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꽃이 진다고 허무해 하는 것은 인간이다. 아직 근원으로 돌아갈 날이 많이 남은, 또는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만이 꽃이 저무는 것을 보고 허무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허무에서 왔고 허무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스스로의 운명임을 우리는 피부 저 안쪽부터 소름 끼치게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알고 있는 것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삶을 지속하는 동안 이룰 수 없는 그 모순적인 욕망. 허무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 욕망이 인간에게 ’허무‘라는 감정적 개념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인류에게 ‘허무’는 생에서는 절대 풀 수 없는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