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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리예 ]
01 July 2023




나는 라면을 자주 먹는다. 라면의 포장지에는 예외없이 조리예가 인쇄되어있는데, 그 사진 속 라면은 작품에 가까운 수준으로 잘 플레이팅되어있다. 물론 이는 연출된 이미지라고 설명이 되어있지만 군침이 도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임을 밝힙니다.’ 라는 멘트를 보고도 영화에 이입이 되듯 말이다. 하루는 라면의 포장지에 나온 것과 똑같이 조리를 하려고 해 보았는데, 청경채와 파는 사진과 다르게 국물에 젖어 축 늘어졌고 빛깔도 칙칙했다. 무엇보다도 조리예에선 그 제품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건더기 후레이크가 보이지 않았다. 일종의 자기부정일까. 사진에서 보이는 그 화려한 토핑들은 실제 후레이크의 미니어처로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라면 포장지의 두께는 0.1mm쯤 되려나. 그 얇은 막 사이에서 연출과 실체 사이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 같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흐름 속에 살아가며 연출의 씁쓸한 맛을 볼 수 밖에/줄 수 밖에 없다. 또한 평면화된 무언가를 통해 받아들인 개념을 실체로 여기는 일에 더욱 익숙해질 것이다. 여태껏 그래왔지만, 앞으로 더욱 더. 나는 내 개인 프로젝트인 간판문화를 탐구하는동안 이 평면적인 박스를 세상의 다양한 파사드와 연관시키기 시작했다. 파사드는 건축에서 건물의 얼굴, 즉 입면을 뜻한다. 그러나 내게 파사드는 건축을 넘어 라면의 포장지까지도 포함한다. 간판의 개념을 포괄하는 파사드는 존재목적이 확실하다. 드러내고 각인시키고 어필하는 것. 선명하다. 세상은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다만 그로 인해 우리는 정보의 습득과 판단이 손쉬워졌고 보는 것과 판단하는 것 사이의 거리가 라면 봉지의 두께만큼 순간적이고 얄팍하다.




세상이 느려질 수 있을까? 현재에는 우주 조차도 가속팽창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난 이 세상의 대부분의 문제가 속도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급격한 개발, 빠른 자동차, 빠른 배송,  짧아지는 릴스 등.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유래한 붉은여왕가설처럼 우리는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뒤쳐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판단의 속도에 대한 평균치가 있다면 불분명함과 모호함에 대한 찬미는 그 선명하리만치 빠른 속도감의 열기를 식혀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달리던 걸음을 멈추어본다. 내가 바라보는 존재에 대한 확신을 놓고, 천천히 판단까지 가는 시간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3분만에 식사가 완성되는 라면의 조리예를 관찰하며 따라하다가 30분을 날려버린 나처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