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엽수 디자이너, 활엽수 디자이너 ]
15 July 2023
작업자의 목소리엔 얼만큼의 날이 서있어야 할까. 내가 졸업한 과의 학풍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문화비평(Culture Critic)이다. 그러한 특성 상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의 작업은 비판하는 바가 명확하다. 대부분 정치적이고 날카롭다. 나는 공격성이 높지 않은 사람이다. 오히려 엔터테이너적인 특성이 강한 사람이다. 물론 학교에 들어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내 작업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공예를 배우던 학부생시절때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범위에서 작가 고유의 미의식 자체를 탐구했었다. 그러나 디자인(한국에서 일컫는 디자인보다는 훨씬 확장된 의미로써의 디자인)을 배우던 대학원때는 아트스쿨에 가까운 정도의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작업을 진행했다. 그 큰 변화 속에서 나는 어찌저찌 적응을 해나갔지만 여전히 나는 문화비평으로써의 디자인 안에서 얼마만큼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태생이 싸우기 싫어하고 날카로운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런 것일까. 내 작업엔 예각이 없다. 시각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고 지목하는 문제의식이 뚜렷한 디자이너는 침엽수종의 나무처럼 느껴진다. 반면 나는 찌르기보다는 덮고, 예리하기보단 뭉뚱그리는 활엽수의 잎사귀같은 작업을 한다. 강조하기보다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주장하기보다는 중얼거린다. 나는 어떤 나무가 되고싶을까. 생물종다양성에 비유해본다면 활엽수와 침엽수 모두가 필요한 나무이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나의 이 날카롭지 않은 태도는 과연 디자인다양성에 기여하는 것일까, 아니면 도태하는 것일까.
15 July 2023
작업자의 목소리엔 얼만큼의 날이 서있어야 할까. 내가 졸업한 과의 학풍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문화비평(Culture Critic)이다. 그러한 특성 상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의 작업은 비판하는 바가 명확하다. 대부분 정치적이고 날카롭다. 나는 공격성이 높지 않은 사람이다. 오히려 엔터테이너적인 특성이 강한 사람이다. 물론 학교에 들어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내 작업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공예를 배우던 학부생시절때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범위에서 작가 고유의 미의식 자체를 탐구했었다. 그러나 디자인(한국에서 일컫는 디자인보다는 훨씬 확장된 의미로써의 디자인)을 배우던 대학원때는 아트스쿨에 가까운 정도의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작업을 진행했다. 그 큰 변화 속에서 나는 어찌저찌 적응을 해나갔지만 여전히 나는 문화비평으로써의 디자인 안에서 얼마만큼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태생이 싸우기 싫어하고 날카로운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런 것일까. 내 작업엔 예각이 없다. 시각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고 지목하는 문제의식이 뚜렷한 디자이너는 침엽수종의 나무처럼 느껴진다. 반면 나는 찌르기보다는 덮고, 예리하기보단 뭉뚱그리는 활엽수의 잎사귀같은 작업을 한다. 강조하기보다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주장하기보다는 중얼거린다. 나는 어떤 나무가 되고싶을까. 생물종다양성에 비유해본다면 활엽수와 침엽수 모두가 필요한 나무이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나의 이 날카롭지 않은 태도는 과연 디자인다양성에 기여하는 것일까, 아니면 도태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