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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인 ]
23 September 2023





나는 아인트호벤에서 약 4년의 시간을 살았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공간이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 해졌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눈을 감고도 선명했고, 지도를 찾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공간들을 누빌 수 있었다. 한 번은 고향인 한국에서 여름을 보낸 후 네덜란드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 게 ‘집에 왔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타고 있던 기차가 아인트호벤 역사로 진입하던 순간이었다. 태어나고 자란 한국의 동네가 아닌 아인트호벤을 집으로 인식하고 있다니… 그런 나 자신에게 깜 짝 놀랐다!



4년의 시간 동안, 아인트호벤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집을 구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고, 어 떤 친구들은 결국 집을 구하지 못해 주변 도시, 때로는 기차로 1-2시간이 걸리는 지역에 집을 구 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건물들을 재개발이 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건물이 철거될 예정 이라 집이나 작업실을 옮겨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고, 실제로 몇몇 건물들은 거대한 기계 가 와서 기존의 구조물을 부수고, 바쁘게 새로운 건물을 올리곤 했다.



우리 동네도 예외는 아니었다. 집 앞의 작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곧바로 보이던 커다란 건물도 철 거되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사용되었던 것 같은데, 안의 공간이 비워지고 나서도 그대 로 꽤 오래 머물렀던 것 같은데, 어느날 벼락이라도 내려온 것처럼 벽면이 허물어졌다. 그 순간들 을 바라보다가, 문득 궁금해져 그 건물의 원래 기능을 찾아보니, 커뮤니티 센터였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나는 건물들이 기존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부서지기 시작할 때, 그 어떤 때보다 그 공간을 선명하게 인지했다. 철거되는 건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역동적이었다. 매일매일 다른 형태 를 가졌고, 그 다음의 모습은 예측이 불가능했다. 이 역동성이 철거의 과정, 건물의 사망에서 생 겨나는 것이 너무 아이러니 했다. 나는 그 모습에 왠지 과묵하게 시간을 견디고 도시를 지탱하던 건물이 숨을 거두기 전에 마지막 소리를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커다랗던 건물이 듬성듬성 서 있는 기둥과, 창 없는 창문 자리로만 남게 되었을 때, 불현듯 이 건 물의 모습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습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 나는 필름 사진기를 들고 와 이곳저곳을 찍어 대고, 빈 건물 사이를 걸어 다니 며 그 안에서 울리는 소리를 녹음했다. 구글 맵에는 건물의 예전 모습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발견 하고 스크린을 통해 과거의 건물 옆을 돌아다니며 산책했다. 3d 스캔 기술을 이용해 건물의 구조 를 변형된 방식으로 기록하고 저장했다.



그러나 왜? 그때는 잘 몰랐으나,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나는 나와 그 건물을 어느정도 동일시 했다는 생각이 든다. 타국에서 넘어와 이곳을 집이라 느끼고, 그러나 어느 날 불현듯 이 곳을 떠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그 공간은 빈 집, 순간으로만 존재하는 공간, 살아있지만 죽어가는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가상적인 동시에, 가장 실재적인 대상이었다. 이 도시가 나 에게 그렇고, 내가 이 도시에게 그러하듯이.



아인트호벤은 오래된 도시가 아닌, 1900년대 필립스라는 큰 회사가 자리를 잡으며 그 직원들이 살 기 위해 조성된 도시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 외에도 여러 테크 회사들이 들어와, 그 회사의 근무자들이 거주한다. 그 밖에도 여러 대학교가 자리하고 있고,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학생들이 이 사를 오고, 또 졸업과 함께 떠나간다. 말하자면, 그다지 오래되지도, 그렇다고 아주 새로운 것도 아닌, 조금은 삭막하게 지루하게 느껴지는 곳. 그리고 그 안을 채우는, 이곳에 흘러 들어왔으나, 대부분이 언젠가 흘러나갈 사람들. 이것은 비단 아인트호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계속해서 크고 작은 도시들은 계획적으로 만들어지고, 우리 세대는 한 곳에만 머물러 살지 않고, 또 못하고 있으니.



나는 이 도시의 아주 평범한 공간, 곧 사라지고 잊혀질 공간을 추모하고 싶었던 것 같다. (구글 맵 은 이미 업데이트를 끝냈고, 예전 건물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 시 대의 도시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럼으로서, 그 도시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개개인의 현재가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되기를, 그럼으로서 기억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