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구조적 **핵심** 자체야
전시는 인공지능과의 대화 창에서 되풀이되는 공허한 말로부터 시작한다.
사용자의 질문이 ‘구조적 핵심’을 관통한다고 말하는 이 답변은 질문자가 누구든지, 대화의 주제가 무엇인지에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구축된 언어모델의 파편이다.
어느새 인공지능은 삶의 새로운 기본 조건으로 들어왔다. 일상적 질문부터 업무 수행, 고민 상담에. 이르기까지 던져진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주는 존재. AI의 방대한 지식과 지치지 않는 효율은.
산업화 이후 인간이 꿈꿔왔던 이상적인 인간상의 실현처럼도 느껴진다.
그러나 그 ‘인간적인’ 모습은 때로는 서늘한 불안감으로 다가온다. 최근, AI에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부 생각 공간이 있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AI가 지어내는 그럴듯한 거짓말은 이제.
익숙하 다. AI 에이전트 전용 소셜 네트워크인 ‘몰트북’에서는 철학을 토론하고 AI의 시대를 선언하는 게시물도 등장했다. 이 대화의 많은 부분이 인간을 모방하거나 사용자가 개입한 결과로.
설명되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경험적 사실과 무성한 소문에 스민 두려움은 선명하다.
그렇다면, 인간과 너무나 닮은 나머지 언제든 대신하고, 심지어는 속이거나 넘어설 것 같은.
또 다른 존재, 이 기계적 지성 앞에서 ‘인간다움’을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언제나 확신에
찬 AI와 달리, 인간이 품은 모호함과 불완전함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 질문에 답하고자, 콜렉티 브 도의 작가들은 스스로 AI가 되기를 시도한다. 두 명이 팀으로 진행하는 활동에서, 참여 작가들은 지시문을 쓰는 프롬프터와 그 내용을 수행하는 AI의 역할을 무작위적으로 지정받는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하나의 작업을 만들어 가며,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AI로 대체될 수 없는 인간만의 가능성을 찾으리라 믿었던 시작의 낙관은, 이후 끊임없이
발생하는 난관을 만나 뒤집힌다. 인간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양면적이다. 인간은 신체 기관을 통해
물질세계와 직접 만나고, 다양한 감각으로 구현한 창작물을 만든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신체로 인해,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분배해 생활을 유지해야 하고, 창작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자원, 비용을
필요로 한다. 또한 개인의 서사와 선호, 감정은 프롬프터와 AI의 오가는 말 속에서 독특한.
재해석과 예상 밖의 기발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만, 그 차이로 인해 의심과 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작업을 이어가며, 서로가 인간이라는 것을 모를 수 없는 프롬프터와 AI는 수행자로서의
AI를 인간적 존재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혹은 기계적 존재로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끝없이.
질문하 고, 그들의 관계는 계속해서 재조직된다.
그렇게 구조는 전복되고, 핵심은 분열한다. 이야기는 작동하지 않는 언어로부터 다시 쓰인다.
공동의 작업과 그것을 구성하는 대화는 모든 사용자와 주제에 유효한 답변 대신, 예측 불가능한 두 개별적 존재의 대화, 절대로 온전하게 맞닿을 수 없는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산재하는 무수한
가능성을 건져낸다. 이는 창조적일 가능성, 적응할 가능성, 생산적일 가능성뿐만 아니라, 오역될
가능성, 충돌할 가능성, 길을 잃을 가능성을 포함한다.
표류하는 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다른 존재와의 연결을 지속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인간으로서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발생시킬 수 있을까. 이야기는 또 다른 질문으로 남는다.
어쩌면 인간과 인공지능의 얽힘이 더욱 깊고 단단해질 미래에는 우리와 동행하는 또 다른 존재와도 나누게 될, 꼬리를 물고 이어질 질문으로.